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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2024년 01월 31일 09:32

수도회 조회:80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마르 6,5-6)

2024년 1월31일(수요일) 나해,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마르 6,2).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놀라워합니다. 하지만 이 놀라움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나자렛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마르 6,3).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왜 그분을 믿지 못했을까요?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하느님의 힘을 보면서도 왜 못마땅하게 여겼을까요?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 (마르 6,3)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가족들에 대한 그들의 앎이, 그분을 메시아로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누군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해 가장 모르고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는 그 앎이 선입견처럼 되어서, 더 이상 그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하는 마음을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일들은 가까운 관계 안에서, 아주 친밀한 관계 안에서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부부관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관계가 '들음'이 중단되지 않게 하십시오. 들음이 중단된 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앎이 중단되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음이 중단된 신앙생활은 그분에 대한 앎이 중단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처럼 그분을 믿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임마누엘), 함께 있어도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게 되는, 아니 오히려 그분을 알려고 하지 않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어버립니다. 만약 신앙의 기쁨이 사라져가고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들음을 중단한 것은 아닌지 한번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은 진실한 들음을 통해 시작됩니다.

(출처: 김재덕 베드로 신부의 '오늘의 묵상')